"말도 안돼요, 지금 절 놀리시는거죠..?"

"장난도 정도껏 치셔야죠, 세상에 그런병이.."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실제로 대전과 서울에서 이미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당국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어 쉬쉬하고만 있을 뿐입니다." "그..그럼 전 어떻게 해야하죠?" "당분간 외출과 인터넷을 삼가셔야 할 수밖에..유감입니다. 다행이라면.. 이제 곧 여름이니 아마 무한도전같은데서 노래를 만들고 또 그노래가 뜨겠죠? 하하" "...."

몇달전 이야기이다. 길을 가던중 시야가 흐려지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가슴팍이 따끔따끔했던 것 같다. 군대가기 전날에 담배 한갑을 연속으로 폈을 때나 있었던 통증이었다.원래 죽었어야 정상인데, 다행히 주위에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의사가 말했다. 몇개의 대학병원을 돌아다닌 결과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10cm의 아메리카노를 한번만 더 들으면 지겨워 죽는 병'이라니. 누가 들어도 웃음이 나올만한 이야기이다. 어휴 지겨워 죽겠다. 지겨워 죽겠다. 라고 말은 했지만 정말 죽을지는 몰랐다. 내 자의로 그 노래를 들은 것은 한두번 뿐이었다. 참 재밌는 일이다. 좋아하는 노래는 수십 수백번을 들어도 괜찮은데.. 그렇다고 내가 이 노래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여튼 덕분에 나는 인파가 많은 장소에는 나가지 못했고, 미니홈피나 블로그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부득이하게 외출할 일이 생겼을 때는 힙덕,락덕이나 쓰고 다닐 대형 헤드폰을 쓰고 나가야했다. 

약 3개월만에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의사가 가사를 읽어주었다. 그 다음에는 MR, 그리고 노래를 들었다. 밖에는 세명의 의사와 간호사, 다섯명의 레지던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라기보단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구경하고 있었다. 너희도 신기한 경험이겠지. 결과는 음성. 멜로디와 노래에서 다소 혈압이 올라가긴 했지만 아마 이제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담당의사가 말했다.

병원앞 벤치에서 담배를 한대 물었다. 쓰레기통에 헤드셋을 구겨넣었다. 이젠 괜찮다. 더이상 지정된 시간에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매일매일 혈압을 체크하지 않아도 된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헤드셋을 쓰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나는 처음 그 노래를 들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분명히 친구의 미니홈피였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미니홈피에서 들은 10cm의 다른 곡을 듣고 흘러 흘러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앨범을 몇번 돌려보고 금새 흥미를 잃어 더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벌써 한참전 작년 얘긴데, 올해 갑자기 이 노래가 유명세를 타게 되어 이지경이 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서 무릎을 탁 쳤다. 그런것일까. 이건 지겨워서 그런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만 아는 노래', '나만 아는 사람'이 갑자기 유명해졌을 때 느끼는 배신감? 아니다. 시기? 서운함? 어떤 단어를 써야 할 지 모르겠다. 소유욕이란 말이 어쩌면 가장 어울릴지 모르겠다. 내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겼을때 드는 감정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 언젠가 폭발하게 되어버리는, 그런 식의 병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소유욕이 아니다. 나만 알고 있던 것. 그것이 있기에 나는 스스로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더이상 나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우매한 대중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때 느끼는 허무함? 현실의 부정? 그래. 예전에 박명수때문에 뮤즈가 잠깐 흥했을 때 뮤즈빠들이 괜히 기분나쁘다고 지랄하던 글을 본 것 같았다. 비슷한 이치겠지. 남들은 대중가요만 듣지만  나는 브릿팝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인데 더이상 그게 아니니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겨움이면 어떻고, 소유욕이면 어떻겠는가. 나는 이제 자유다. 오랜만에 인파가 많은 곳에 서고 싶었다. 가까운 대학로로 갔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혼자인 사람은 많았지만 혼자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커피숍에 들어갔다. 몇달간 출입금지구역 0순위였던 커피숍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소다수와 쿠키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라, 그때였다.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젠장, 시작됐다. "난 그대를 정복하는-" 숨이 가빠져오고 뭔가가 가슴을 쿡쿡 찌른다. 의사의 농담이 생각난다. "사랑의 정복자 순정마초-" 그때와 똑같다. 역시 그런거였다. 허무하다. "날 가지려 해도 날 잡으려 해도-" 점원에게 손을 흔들지만 그녀는 뒤를 돌아서 커피를 내리며 뭔가를 투덜거리고 있다. "달밤의 미스테리 옴므파탈-" 뒤로 넘어진다. 이번에도 살 수 있을까. 이번에는 씨피알로 안될 것 같은데. 살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점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어우 요즘 이노래 너무 많이 나와서 지겨워 죽을것 같아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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